눈의 아침 : 고요함과 깨달음

 

이른 아침의 숲은, 세상이 멈춘 듯한 정적에 감싸여 있었다.
하늘은 아직 옅은 푸른빛을 머금은 채, 밤의 흔적을 희미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 하얀 무언가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눈이었다. 나뭇가지 위에도, 풀밭 위에도, 지붕 위에도, 차갑고도 부드러운 층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다.

 

끼익— 조용히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오두막의 문이 열렸다.

라크스가 한 걸음,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살을 에는 듯한 찬 기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곧바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얀 입김이 하나, 후욱— 하고 떠올라 조용히 허공에 녹아들었다.

 

"……내리기 시작했구만."

툭, 흘러나온 한 마디는 눈 속에 스며들 듯 사라져갔다.

 

발밑에는 아직 누구의 발자국도 없는 새하얀 눈이 고요히 쌓여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오히려 그 풍경은 라크스의 존재감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말없이, 그저 내리는 눈 속에 몸을 맡긴 채 서 있었다.

 

그 뒤에서, 다시 한 번 문이 삐걱이며 열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추위에 잘도 나오네."
무뚝뚝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곁에 선 코르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만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쫓았다.

 

"난, 더운 것보다 추운 게 좋아서 말이지."
라크스가 그렇게 대답하며,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은 끊임없이 내리고, 부드럽게 어깨 위로 흩날리다 조용히 녹아내렸다.

 

"……올겨울 첫눈인가."
코르스의 나직한 중얼거림 역시, 눈처럼 잔잔했다.

 

“그래. …둘이서 보는 건 처음이네.”

라크스의 말에, 코르스는 그녀의 옆모습을 힐끔 바라본다.

“…그렇게 말하니, 괜히 특별한 기분이 드네.”

 

”훗, 솔직하지 못하네.”

 

"시끄러."

 

어깨 너머로 눈이 마주친 두 사람 사이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빈정거림도 농담도 아닌, 단지 평온한 기운이 깃든 순간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라크스가 문득 추억에 잠긴 듯 입을 열었다.

“예전엔, 눈이 싫었어. 먹을 것도 줄고, 사냥할 땐 발이 묶이니까.“

 

"지금도 별반 다를 건 없잖아."

 

"그래도…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보는 눈은... 나쁘지 않네."

 

다시 한번, 고요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모든 소리를 삼켜버리는 눈 내리는 아침.
차가운 공기 속에서, 옆에 느껴지는 따스함만이 희미한 온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자, 춥지? 들어가자."
코르스가 그렇게 권하지만, 라크스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도 돼?"

 

그 대답에 코르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감기 걸려도 몰라."

 

말은 그렇게 해도, 그는 움직이지 않고 그녀 곁에 서 있었다.

그저 고요하게,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함께 있는 것. 그 침묵 자체가 무엇보다도 확실한 답이었다.

 

라크스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 이게 ‘누군가와 함께하는 겨울’이구나. 나쁘지 않아.

 

잠시 후, 문득 떠오른 듯 말문을 열었다.

"……있잖아. 처음엔 이 오두막, 피랑 고함소리로 가득했잖아. 참 많이도 변했네."

 

코르스는 곁눈질로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멋대로 얽혀들어와서 그렇지. ……뭐, 살기엔 나쁘지 않아. 이상한 드래곤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야."

 

"야."

 

"사실이잖아?"

 

“뭐, 그건 그렇지만 말야. 그래도… 나쁘진 않아.”

 

그 말투에는 쑥스러움을 감추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진심이 스며 있었다. 코르스는 약간 놀란 듯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슬며시 시선을 돌린다.

 

"……너야말로 이상해졌어. 요즘 좀 둥글어졌잖아."

 

“그래? 뿔은 아직 뾰족한데 말이야.”

 

”알고 있어”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맞추고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박한 웃음소리마저 눈에 녹아들 듯 흩어졌지만, 분명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하얗게 물든 세상 속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는 서로 기대듯 서 있었다. 그 조용한 따스함은, 눈 내리는 아침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