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언덕 : 향기와 그림자
봄의 숲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부드럽게 잠겨 있었다.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속삭이는 듯한 물소리를 내고, 습한 공기 속에는 새싹과 흙냄새가 조용히 녹아들었다. 빗방울이 땅을 두드릴 때마다 젖은 흙에서 피어오르는 짙고 푸른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멀리서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새들의 지저귐과 어우러져, 봄의 고동을 조용히 실어 나르고 있었다. 오두막 앞의 풀밭은 비에 젖어 반짝였고, 스며든 물방울은 땅 위에 작은 물결을 넓게 퍼뜨리고 있었다.
라크스는 오두막 문을 벌컥 열고, 처마 밑에 멈춰 섰다. 붉은 눈동자는 비 내리는 숲을 노려보듯 응시했고, 젖은 바람에 금빛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용의 꼬리는 안절부절 못한 듯 바닥을 파닥이며 두드렸고, 푸른 비늘이 덮인 손은 옷자락을 무의식적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뭐야… 이 초조함은… 코르스, 왜 너랑 있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
마음속 목소리가 새어 나올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아릿함이 번개처럼 울렸다.
며칠 전, 코르스의 어깨에 기대었을 때의 그 묘한 들뜸,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을 때 보였던 그 당황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때도 가슴이 이렇게 요동쳐서… 젠장, 모르겠어…)
“쯧, 이런 기분, 젼혀 모르겠다고!”
라크스는 독백처럼 내뱉고는 비 내리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진흙을 밟는 발소리가 축축한 땅에 스며들고, 빗방울이 갈색 피부를 미끄러져 내렸다. 그녀는 가까운 언덕을 향해, 가슴의 술렁임에서 도망치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비가 흙을 적실 때마다, 대지의 향이 더욱 짙게 피어올랐고, 이끼와 풀잎이 섞인 젖은 향기가 그녀를 감싼다.
(번개의 샘 곁에선 이런 향, 느낀 적 없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코르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 약초를 다루는 능숙한 손, 귀를 쫑긋 세우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전부 네가… 네가 날 이런 기분 들게 만든 거잖아…)
언덕 꼭대기에 다다르자,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라크스는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젖은 흙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방울이 붉은 눈동자에 떨어지며 시야를 흐린다.
(이 술렁거림… 내가 약해서 그런걸까…? 널 떠올리면 가슴이 미칠듯 조여와…)
그녀는 무릎을 꿇고, 진흙을 움켜쥐었다. 비에 젖은 흙은 차가웠고,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내리는 감촉과 함께, 풀과 부엽토의 짙은 향이 코를 찔렀다.
유적의 번개의 샘은 자유로웠지만, 어딘가 공허했다. 하지만, 지금 이 가슴의 술렁임은, 코르스와의 시간이 그녀의 마음 깊숙이 새겨놓은 무언가였다.
그때, 등 뒤에서 풀잎을 밟는 발소리가 들렸다. 라크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 기척이 코르스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꼬리가 움찔하고 움직이며, 마음이 또 한 번 요동쳤다.
(왜 쫓아온거냐… 이 감정, 어쩌런거야…)
“……비 오는 데서 멍하니 뭐 하는 거야, 바보냐.”
코르스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지만, 어딘가 걱정이 섞여 있었다.
그는 라크스 옆에 다가서며, 후드 사이로 붉은 눈동자를 드러낸 채 그녀를 내려다봤다. 빗소리에 귀가 움찔하고, 젖은 금빛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파우치에는 빗방울이 또르륵 떨어졌고, 빗물에 젖은 흙의 푸르디푸른 향이 두 사람 사이에 퍼져나갔다.
라크스는 진흙투성이가 된 손을 털어내며, 일부러 강한 척 씩 웃어 보였다.
“바보는 너잖아. 전엔, 내가 가까이 있어서 '진정이 안 돼'라고 투덜대더니, 이런 빗 속을 쫓아온다던가, 어지간히 내가 걱정됐나봐?"
코르스는 귀를 움찔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내버려 둘 수 있겠냐. 너, 이상한 얼굴로 뛰쳐나갔잖아.”
라크스는 순간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그때의 술렁임, 들켰던 건가……? 젠장, 왜 그렇게 눈치가 빠른 거야…)
가슴 속 고동이 너무 시끄러워서, 솔직한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녀는 흙을 슬쩍 걷어차며, 비에 젖은 꼬리를 흔들어 어색함을 감췄다. 튄 흙과 함께, 빗물에 젖은 풀과 대지의 향기가 콧속 깊숙이 스며든다.
“……있잖아, 코르스. 봄이란거 말야, 왠지 이상하지 않아? 비에 젖은 땅 내음이라던가…… 가슴이 괜히 뒤숭숭해서, 진정되질 않아.”
간신히 짜내듯 말을 뱉자, 코르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라크스를 바라보았다. 빗방울이 그의 귀를 타고 흘러내리고, 젖은 흙내가 한층 짙어졌다.
코르스는 파우치를 움켜쥐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참나, 시끄러, 네가 소란피우니까, 괜히 이상한 기분 들잖아.”
라크스의 붉은 눈이 단숨에 커지며, 가슴 속 무언가가 일렁였다.
(뭐야, 그 말투…! 좀 동요한거 아냐?)
마치 번개가 가슴을 치듯 심장이 움찔했고, 볼에 열이 확 번졌다. 그녀는 당황한 듯 시선을 피하며, 손가락으로 진흙을 툭툭 건드리며 어색함을 감추려 했다.
“하, 뭐야 그게… 너 항상 그런 무표정으로 얼버무리는 거 아니야?”
장난 섞인 말투였지만, 목소리는 어딘가 떨리고 있었다.
코르스는 귀를 움찔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바보 같은 소리마. …너야말로 이상한 얼굴 하고 있잖아. 가슴이 술렁이는 거, 정말 비랑 흙 냄새 때문인거냐?”
라크스는 무심결에 진흙을 꽉 쥐었다. 비에 젖은 흙은 부드럽고, 풀과 부엽토의 축축한 향기가 손끝에 감겨왔다.
(젠장… 왜 그렇게 딱 잘라 말하는 거야…! 이 감정, 전부 네 탓인데…)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흥, 비 탓인 게 당연하지. 이 푸릇푸릇한 흙 냄새 때문에 기분이 이상해지는 거라고… 근데 말야, 네가 가까이 있으면 이 술렁임이 묘하게도 가라앉아..”
코르스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금세 시선을 돌렸다.
“…정말, 쓸데없는 소리마.”
라크스는 씨익 웃으며 일어나 코르스 옆에 나란히 선다.
(너, 숨기곤 있지만 좀 동요하고 있잖아…? 이 설렘, 더 가까이서 느껴봐도 괜찮겠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녀는 진흙투성이인 손으로 코르스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있잖아, 코르스. 이렇게 비 오는 데서 나란히 서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코르스가 슬쩍 라크스를 쳐다보다가 바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이지, 네 맘대로 편하든가. …뭐, 나쁘진 않지만 말야”
투덜거리는 목소리였지만, 그의 귀가 살짝 떨리는 걸 라크스는 놓치지 않았다.
(너, 그렇게 얼버무려도, 좀 기분 좋아보이잖아…?)
속으로 중얼거리며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헷, 그럼 또 여기서 이렇게 서 있어줄게.”
“…진짜, 네가 그렇게 떠들어대니까 귀찮은거야."
두 사람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언덕 위에 울려 퍼졌다.
비는 조용히 숲을 적시고, 풀과 대지의 촉촉한 향기가 두 사람의 발치에 스며들었다.
언덕 꼭대기에서 나란히 어깨를 맞댄 두 사람의 그림자는 봄의 부드러운 빛에 살며시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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