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의 고동 : 힘과 신뢰
울긋불긋한 가을 숲은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마른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땅을 뒤덮었다. 햇살은 나뭇가지 사이로 얼룩덜룩하게 비치고, 서늘한 공기가 흙과 이끼의 향기를 실어 나른다. 멀리서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새들의 지저귐과 어우러져 고요한 가을의 선율을 연주했다.
라크스와 코르스는 가을에 효능이 강해지는 희귀한 약초를 찾기 위해 오두막을 떠나 숲 외곽의 절벽 근처로 향하고 있었다. 라크스의 금빛 머리카락은 가을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렸고, 용의 꼬리는 낙엽을 가볍게 쓸어냈다. 붉은 눈동자는 주변을 예리하게 살피며, 힘찬 발걸음으로 코르스의 앞을 나아갔다.
코르스는 늘 그러하듯 검은 망토를 두르고, 약초 채집용 가죽 주머니를 어깨에 짊어진 채, 붉은 눈으로 땅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야, 코르스! 이 숲 좀 봐! 울긋불긋한게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어! 끝내주는 풍경 아니냐?”
라크스는 가슴을 활짝 펴고 씩 웃으며 코르스를 돌아봤다. 그녀의 목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고, 낙엽을 밟는 소리와 뒤섞였다.
코르스는 몸을 숙여 작고 푸른 약초를 조심스레 따서 가죽 주머니에 넣는다. 시선은 날카롭게 땅을 훑으며, 잎의 모양과 냄새를 신중히 확인했다.
“시끄러. 풍경만 보지말고 제대로 주위나 살펴. 절벽 근처에선 마수가 나올 수도 있어.”
라크스의 웃는 얼굴을 힐끗 보곤, 퉁명스럽게 말했다.
햇살이 절벽의 그림자에 가려지며 숲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라크스는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결에 눈을 반짝이며, 용의 꼬리를 가볍게 흔들고 성큼성큼 앞으로 내디뎠다. 코르스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축축한 흙 속에 숨은 약초를 하나씩 찾아내 가죽 주머니를 채워간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경쾌하게 조화를 이루며, 가을 숲에 생기와 신뢰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우르르’ 하고 낮은 굉음이 울렸다.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나뭇잎이 부자연스럽게 흔들렸다. 코르스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절벽 쪽을 예리하게 주시했다. 라크스도 꼬리를 멈추고, 붉은 눈을 가늘게 뜨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지면이 흔들려. 뭔가 이상한데.”
라크스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어깨를 한 번 돌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요란하네. 절벽 쪽인가본데… 가볼까?”
코르스는 일어서며 가죽 주머니를 어깨에 다시 걸쳤다. 흙이 무너지는 미세한 소리를 놓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긴다.
“재밌겠는걸! 당장 가자!”
라크스는 꼬리를 탁! 하고 땅에 내리치며 씩 웃고 코르스의 뒤를 따라나섰다.
◆
흙이 무너지는 소리를 쫓아 숲을 빠져나오자, 절벽 아래의 교역로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상인의 마차가 산사태에 휘말려 절반쯤 흙에 파묻혀 있었고, 짐칸의 나무 상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말이 불안하게 울부짖었고,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상인이 필사적으로 흙을 파내며 소리치고 있었다.
“이봐! 거기 너! 괜찮아!?”
라크스는 절벽 끝자락으로 뛰쳐나가 상인을 향해 소리쳤다.
상인은 라크스의 용의 뿔과 꼬리를 보고 놀라면서도 도움을 청했다.
“제발, 도와줘! 짐이… 이대로면 다 망가져버려!”
코르스는 절벽 끝에 서서 흙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으며, 흙이 무너지는 미세한 소리를 듣고 전체적인 상황을 판단했다.
“…지반이 아직 불안정해. 당신은 일단 말부터 진정시켜. 그리고, 라크스, 무작정 힘으로 움직이려 들지말고.”
“쳇, 알았어! 조심히 하면 되잖아?”
라크스는 코르스의 지시를 받아들여, 마차 쪽으로 신중히 접근했다. 그녀는 흙을 파내며 상태를 확인하고, 힘을 조절하며 마차를 끌었다. 상인은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삐를 잡고 라크스의 힘에 맞춰 마차를 움직였다.
코르스는 흙더미 사이로 흩어진 상자들을 주워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시선은 항상 흙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필요할 때마다 라크스에게 지시를 보냈다. 라크스도 지면의 상태를 살피며, 그녀 나름의 판단으로 신중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마침내 마차가 흙더미에서 벗어났고, 말도 진정되었다. 상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고마워!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
그는 가죽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코르스에게 내밀었다.
“필요 없어. 무사하면 그걸로 된거지.”
코르스는 금화를 도로 밀어내고 가죽 주머니를 어깨에 걸쳤다. 라크스는 씩 웃으며 상인을 가볍게 툭 쳤다.
“우릴 잊지나 말라고, 알았지?”
상인은 거듭 감사의 말을 전하며 마차를 정리하고 교역로를 따라 떠나갔다.
◆
두 사람은 상인을 배웅하고 절벽에서 조금 떨어진 평지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뺨을 스치고, 낙엽이 바스락거리며 흩날렸다. 라크스는 팔짱을 끼고 웃었다.
“이런 일도 나쁘지 않네! 내 힘이 꽤 도움이 됬지?”
코르스는 가죽 주머니를 어깨에 다시 걸치며 발밑을 확인하듯 살짝 발을 내디뎠다.
“뭐, 네가 날뛰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지. …그나저나 이 주변 지반이 약해져있어. 빨리 샛길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샛길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코르스가 절벽을 따라 뻗은 좁은 샛길에 발을 내디딘 그 순간, '쿵'하고 땅이 울리며 여진이 덮쳐왔다. 절벽의 경사면이 무너져 내리고, 바위가 부서지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내디딘 발밑의 지반이 갈라지며, 코르스의 몸이 절벽 아래로 미끄러지듯 떨어지려 했다.
“코르스!!”
라크스의 외침이 숲에 메아리쳤다. 붉은 눈동자가 커지며, 전신에 푸른 뇌광이 순간적으로 스쳤다.
콰직!
등 피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평소엔 감춰두던 라크스의 날개가 이 순간만큼은 망설임 없이 펼쳐졌다. 푸른 비늘로 덮인 거대한 용의 날개의 가장자리를 따라 뇌광이 번쩍였다. 펼쳐지는 충격으로 땅이 파이고, 낙엽이 휘날리며, 바람의 압력이 주변 초목을 흔들었다. 등에 가벼운 통증이 스쳤지만,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코르스에게로 몸을 날렸다.
라크스의 팔이 코르스의 몸을 단단히 붙잡았고, 힘차게 날개를 퍼덕였다. 바람의 압력이 절벽의 흙을 휘감았고, 두 사람은 허공에 잠시 떠오른 뒤 곧바로 평평한 땅에 착지했다. 라크스는 코르스를 조심히 내려놓고, 숨을 가다듬으며 일어섰다.
“네 앞에서 날개 펴는 건 처음인데, 예전엔 사냥할 때 꽤 써먹었거든. …근데, 널 이렇게 구할 수 있게 되서, 기분이 좋네!”
라크스는 가슴을 펴며 씩 웃었다. 그녀의 표정엔 코르스를 구한 것에 대한 만족감이 스며 있었다.
코르스는 무릎을 꿇고 숨을 돌린 뒤, 조심스레 라크스를 올려다본다. 붉은 눈동자가 놀라움과 감사로 흔들렸다. 그녀의 등 뒤에 펼쳐진 날개의 푸른 비늘과 뇌광은 마치 번개의 화신처럼 그의 눈에 각인되었다.
“…네 날개… 정말 굉장한데? …덕분에 살았어, 라크스.”
코르스는 가죽 주머니를 다시 정돈하곤,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라크스에 대한 신뢰가 그의 눈에 조용히 깃들었다.
라크스는 꼬리를 탁! 하고 땅에 내리치며,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네가 무사하면 그걸로 됐지! 다음엔 네가 멋진 모습을 보여줘, 기대할테니까!”
코르스는 일어서며 약간 코웃음을 치듯 말했다.
“…정말이지, 너무 우쭐대는거 아니야? ...뭐, 다음엔 이런 일 다시는 없도록 할거야.”
가을 숲에 낙엽이 사각사각 흩날린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젖은 흙 위에 울려퍼지고,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들며 그들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라크스의 날개는 다시 등 안으로 천천히 접혀들고, 푸른 뇌광도 잦아든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속엔, 코르스를 구해낸 자부심과 그 사이에 싹튼 결속의 열기가 여전히 뜨겁게 남아 있었다. 코르스 또한 그녀의 강인함과 따뜻함을 마음 깊이 새기며, 함께 발걸음을 내딛었다.
숲의 샛길을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간다. 잔잔한 가을 바람이 그들의 유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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