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잔향 : 뇌광과 뇌석
가을 숲은 울긋불긋한 잎사귀들이 땅을 덮었고, 차가운 바람이 나무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라크스와 코르스는 약초 채집을 마치고 숲속 오솔길을 따라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숲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들리던 강물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나무 사이를 지나자 달빛이 비치는 호숫가가 펼쳐졌다. 호수 표면에는 은빛 물결이 일렁이고, 잔잔한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라크스의 금빛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고, 용의 꼬리가 땅을 가볍게 두드릴 때마다 푸른 불꽃이 치직거리며 튀었다. 코르스는 약초 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붉은 눈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있잖아, 코르스… 세레니아 때부터 계속 이상한 기운 느껴지지 않아? 번개 냄새가 어디 있든 희미하게 느껴져.”
라크스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뒤섞인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나무 사이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응… 네 번개랑 비슷하기는 한데… 뭔가 약초 향이 섞여 있어. 인간도, 수인도 아닌 느낌이야.”
코르스는 낮게 대답했다. 그의 귀가 미세하게 움직이며 숲 깊은 곳의 기운을 감지한다. 허리의 파우치 속 뇌석이 작게 울렸다.
“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지금, 바로 저기야.”
그녀의 뿔이 푸르게 빛나고 두 팔에 파란 불꽃이 옅게 일렁였다.
코르스는 약초 주머니를 움켜쥐며 조용히 말했다.
“성급하게 굴지 마, 이 바보야. 적일 수도 있다고. …가자.”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하고, 달빛 아래 호숫가 숲 속으로 발을 옮겼다. 바람이 거세지며 약초와 번개의 향이 뒤섞여 떠돌았다.
숲 깊은 곳, 달빛이 나무 사이를 스며드는 가운데, 한 그림자가 날렵하게 움직인다. 검은 망토의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소녀가 나무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금빛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푸른 용의 뿔과 붉은 눈동자가 달빛을 반사한다. 긴 귀가 뒤쪽의 발소리를 포착하고, 꼬리 끝에서 새어 나온 번개빛이 땅을 태웠다. 목에 걸린 뇌석이 푸른스름한 빛으로 맥동하며 그녀의 심장 고동에 맞춰 조용히 떨렸다.
탁 트인 바위 지대에 나온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밤을 갈랐다.
“너구나! 도망치지 마!”
라크스가 나무 사이에서 튀어나왔고, 코르스는 반대쪽에서 재빨리 포위하듯 다가갔다. 코르스의 귀와 오감이 소녀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소녀는 바위에 등을 기댄 채 후드를 깊이 고쳐 썼다. 뇌석이 푸르스름하게 깜박이 며 그녀의 손에 푸른 불꽃과 뇌광이 휘감겼다.
“…들켰어.”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감정을 억누른 듯한 울림이었다.
“숨어봤자 소용없어! 그 번개랑 불꽃, 나랑 똑같잖아! 너, 정체가 뭐야!”
라크스는 양팔에 번개와 푸른 불꽃을 휘감은채 한 걸음 내딛는다. 주변의 공기가 찌릿거리며 떨리고, 달빛이 불꽃에 흔들렸다.
코르스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묻는다.
“네 약초 냄새, 내 거랑 비슷해. 왜 우리를 쫓아다니는 거지? 목적이 뭐야?”
소녀는 대답 없이 손으로 푸른 불꽃과 번개빛을 검처럼 응축해 라크스를 향해 날렸다. 굉음과 함께 공기를 가르며 불기둥이 뻗어나갔다. 그녀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번개빛의 궤적이 달빛에 녹아들 듯 정확했다.
라크스는 씩 웃으며 번개와 푸른 불꽃을 온몸에 휘감고 돌진했다. 그녀의 주먹이 땅을 내리치자,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소녀의 공격을 튕겨냈다. 땅이 타들어가고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소녀는 그 틈을 타 허리춤에서 꺼낸 주머니로 흰 연기를 피워 시야를 가렸다.
“라크스, 연기 안쪽이야!”
코르스가 날카롭게 외쳤다.
라크스가 날개를 펼쳐 바람을 일으키며 연기를 날려버린다. 소녀의 모습이 달빛 아래 드러났고, 그녀는 번개와 푸른 불꽃의 결계를 만들어 라크스의 공격을 막았다. 충격에 소녀의 몸이 휘청이며 무릎이 땅에 닿았다.
코르스가 우회하려 했지만, 소녀가 땅에 번개를 내리쳤다. 폭발음과 충격파가 두 사람을 밀어냈고, 호수 표면이 흔들리며 달빛이 부서졌다.
“엄청난 힘이야! 너, 그냥 여행자가 아니구나?”
라크스는 웃으며 온몸에서 번개와 푸른 불꽃을 뿜어낸채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녀 주변에서 뇌광이 파지직 튀며 땅에 그을린 자국을 남긴다.
소녀의 결계가 삐걱거리고, 뇌석이 푸르게 깜박였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순간 흔들리며 라크스를 바라보았다.
“…왜 웃고 있는거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당혹감이 묻어났다.
라크스는 번개와 불꽃을 거두고, 꼬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네 눈빛, 싸우려는 눈이 아니야. …야, 왜 그리 슬픈 얼굴을 하는 거냐?”
그녀의 말투엔 도발보단 순수한 호기심이 배어났다.
소녀는 뇌석을 만지며, 후드 너머로 눈을 내리깔았다. 잠시 말이 막힌 듯 침묵하더니, 곧 차갑게 대꾸했다.
“…신경 꺼. 당신들과 엮일 생각은 없었어.”
그 목소리는 날카롭고, 차가운 벽을 세우는 듯했다.
코르스가 한 걸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네 뇌석, 내 거랑 판박이야… 뭔가 숨기고 있잖아? 얘기해 봐.”
그의 붉은 눈동자가 소녀의 뇌석에 꽂히고, 가슴 저 밑바닥에서 낯익은 떨림이 울렸다.
소녀는 뇌석을 꽉 쥐곤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후드 너머 붉은 눈동자가 잠깐 먼 기억을 떠올리듯 흔들렸다.
“…얘기할 거 없어.”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고 깊은 피로가 묻어났다.
라크스 는 어깨를 으쓱하며 코르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 코르스. 이 녀석… 적 같진 않은데, 어쩔거야?”
그녀의 꼬리가 부드럽게 흔들리며 번개빛이 약해졌다.
코르스가 귀를 움직이며 조용히 말했다.
“응. 우리를 쫓아다닌 건 확실한데… 지금은 말할 생각이 없나보네.”
그 순간, 소녀가 땅에 번개와 푸른 불꽃을 뿜어내며 강렬한 섬광과 연막을 만들어냈다. 라크스와 코르스가 섬광에 눈을 가리는 사이, 그녀는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라크스 가 연기를 걷어내며 꼬리로 땅을 탁 쳤다.
“쳇, 도망쳤어! 쫓자, 코르스!”
그녀가 몸을 앞으로 숙이려는 순간, 코르스가 팔을 붙잡았다.
“잠깐. 저 녀석, 적 같진 않아. 하지만 뇌석이나 약초… 우리랑 너무 비슷해. 섣불리 쫓으면 함정에 빠질지도 몰라. 뭔가 꿍꿍이가 있어.”
그의 붉은 눈동자가 소녀가 사라진 어둠을 쫓았다.
◆
두 사람은 다시 오두막으로 향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호수 표면에는 소녀의 뇌석이 남긴 푸른 빛이 조용히 일렁였다. 마치 그녀의 기운이 아직 그곳에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코르스는 파우치 속 뇌석을 쥐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 …저 뇌석,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라크스가 꼬리를 흔들며 웃었다.
“다음엔 도망치게 안 둬. 전부 털어놓게 하자고!”
달빛 아래, 숲의 고요가 두 사람의 발소리와 겹쳐졌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애니뉴잉 규칙 안내 | admin | 2021.12.10 | 6891 |
» |
[소설] | ciTe표 AI소설 17
![]() | ciTe | 2025.07.11 | 9 |
44 |
[소설] | ciTe표 AI소설 16
![]() | ciTe | 2025.07.09 | 13 |
43 |
[소설] | ciTe표 AI소설 15
![]() | ciTe | 2025.07.09 | 16 |
42 |
[소설] | ciTe표 AI소설 14
![]() | ciTe | 2025.07.08 | 17 |
41 |
[소설] | ciTe표 AI소설 13
![]() | ciTe | 2025.07.07 | 22 |
40 |
[소설] | ciTe표 AI소설 12
![]() | ciTe | 2025.07.05 | 27 |
39 |
[소설] | ciTe표 AI소설 11
![]() | ciTe | 2025.07.04 | 31 |
38 |
[소설] | ciTe표 AI소설 10
[1] ![]() | ciTe | 2025.07.01 | 45 |
37 |
[소설] | ciTe표 AI소설 09
[1] ![]() | ciTe | 2025.07.01 | 42 |
36 |
[소설] | ciTe표 AI소설 08
[1] ![]() | ciTe | 2025.06.30 | 44 |
35 |
[소설] | ciTe표 AI소설 07
[2] ![]() | ciTe | 2025.06.29 | 44 |
34 |
[소설] | ciTe표 AI소설 06
[1] ![]() | ciTe | 2025.06.28 | 42 |
33 |
[소설] | ciTe표 AI소설 05
[3] ![]() | ciTe | 2025.06.27 | 44 |
32 |
[소설] | ciTe표 AI소설 04
[2] ![]() | ciTe | 2025.06.27 | 45 |
31 |
[소설] | ciTe표 AI소설 03
[1] ![]() | ciTe | 2025.06.26 | 37 |
30 |
[소설] | ciTe표 AI소설 02
[1] ![]() | ciTe | 2025.06.26 | 39 |
29 |
[소설] | ciTe표 AI소설 01
[3] ![]() | ciTe | 2025.06.24 | 50 |
28 |
[그림] | 쟈히 님은 기죽지 않아!
[1] ![]() | ND | 2025.04.11 | 303 |
27 |
[기타] | 어른들의 모임
[1] ![]() | ND | 2024.12.23 | 454 |
26 |
[그림] | 이번엔 지인요청으로 그린 사막에 있는 여군입니다.
[2] ![]() | 만능카피더쿠사이 | 2024.07.15 | 7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