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유인 : 이름과 눈동자
달이 구름에 가려지자 숲은 깊은 어둠에 삼켜졌다. 차가운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며, 스치는 소리만이 밤공기를 울렸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낮과 밤의 기온 차는 점점 더 심해졌다. 숲에는 색 바랜 낙엽이 흩날렸고, 밤마다 모닥불의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되었다.
사흘 전, 호숫가에서 사라진 소녀의 그림자를 라크스는 몇 번이고 꿈에서 보았다. 붉은 눈동자와, 푸르게 맥동하던 뇌석, 왠지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아릿한, 이름 없는 기억이 고동쳤다.
코르스 역시 그녀의 약초 냄새를 떠올릴 때마다 묘한 향수 속에서 마음이 저릿하게 흔들렸다.
그 밤 이후, 벌써 사흘이 흘렀다.
오두막 밖, 쓰러진 나무 위에 걸터앉은 라크스는 팔짱을 낀 채 숲의 깊은 곳을 노려보았다. 숨을 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찔렀다.
“아직도 신경 쓰여… 그 아이의 눈빛,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아.”
툭 내뱉은 목소리에, 오두막 옆에서 장작을 정리하던 코르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문득 테이블 위에 놓인 뇌석으로 향했다.
그날 밤, 그녀가 지니고 있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색도, 형태도, 심지어 빛의 일렁임마저도.
“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 냄새, 내가 늘 조합하던 약초와 비슷하다고… 뇌석의 형태도, 약초에 대한 지식도… 그냥 떠돌이여행자는 아니야. 분명 무슨 목적이 있을 거야.”
코르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에는 날카로운 경계심이 떠올랐다.
라크스는 그의 옆모습을 힐끗 보았다. 장작을 능숙하게 묶는 그의 손놀림에 가슴이 술렁였다. 믿고 있다. 하지만 그 불안을 지우려는 듯, 자꾸만 같은 말을 되풀이하게 된다.
그 순간, 코르스의 코가 살짝 움직였다.
“이 달달한 냄새… 유인초(誘引草)야.”
“유... 인... 초...?”
크스가 눈썹을 찌푸렸다.
코르스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 페로몬과 비슷한 성분이 있어. 마수를 끌어들이지. 예전에 나도 그걸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
이렇게 강한 향기는 지금껏 없었어. 바람 방향으로 보아… 남쪽 비탈 근처일 거야.”
“누군가 일부러 피우고 있다는 거야?”
라크스는 숨을 삼키며 잠시 바람 부는 쪽을 응시했다.
이 가슴의 술렁임, 틀림없어. 그때와 같아.
“또, 그 애일지 몰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꼬리가 순간 푸르스름한 불꽃을 튀겼다. 그 눈에는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야, 기다 ——!”
코르스가 만류할 새도 없이, 라크스는 숲 깊은 곳으로 내달렸다.
그 배후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코르스도 곧바로 뒤를 따랐다.
침엽수들이 늘어선 밤의 숲은 끝없는 검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희미하게 떠도는 달콤한 향기. 하지만 무언가 타는 듯한 불의 기운도 섞여 있었다. 라크스의 가슴에 설명할 수 없는 예감이 스쳤다. 마치, 아주 오래전 알던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가는 듯했다.
이윽고, 나무 사이로 검은 후드를 쓴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쪼그려 앉은 소녀가 불을 피우며 유인초를 감싼 종이를 태우고 있었다. 연기가 바람을 타고 숲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녀의 손끝은 익숙했지만, 어딘가 떨리고 있었다. 마치 금기를 범하는 듯한 망설임이 그 움직임에 배어 있었다.
붉은 눈빛이 이쪽을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라크스의 가슴이 강렬하게 요동쳤다. 그 눈동자. 마치 자신의 기억을 들여다본 듯한 감각이 스쳐갔다.
“역시… 그 애야.”
“ 유인초를 저렇게 많이 태우다니… 제정신이 아니야.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소녀는 두 사람을 알아채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놀라움과 당혹, 그리고… 말을 삼키듯 입술이 떨렸다.
알아서는 안 될 인연을 마주한 듯, 그녀의 눈동자에는 복잡한 빛이 흔들렸다.
그 한순간의 망설임이 치명적인 결과를 불렀다.
숲속 덤불을 흔들며, 검은 털로 뒤덮인 거대한 형체가 튀어나왔다. 어깨까지의 높이가 2미터를 넘는 마수가, 거품 섞인 침을 흘리며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위험해!”
라크스가 외친 순간, 마수의 날카로운 발톱이 소녀의 등을 스쳤다. 그녀는 땅으로 고꾸라지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라크스의 심장이 순간 멎는 듯했다. 왜인지 그녀의 고통이 자신의 것처럼 가슴을 찔렀다.
“이 자식…!”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라크스는 비탈을 뛰어내려 소녀 앞을 가로막았다. 오른손이 뜨거워지며 푸르스름한 뇌광이 터져 나왔다.
——쾅!
번개가 마수의 얼굴을 꿰뚫으며 그을린 털과 화약 같은 냄새가 퍼졌다. 마수는 비틀거리며 포효했지만, 곧 땅을 디디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한 방 더…!”
라크스가 뇌광을 다시 굳히려는 순간, 코르스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안 돼! 저기, 지반이 약해!”
비탈의 흙은 메말라 갈라진 틈이 보였다. 더 이상의 충격은 산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쳇…!”
라크스는 소녀의 팔을 붙잡고 나무 그늘로 구르듯 들어갔다.
마수가 쫓으려 발을 내딛는 순간, 코르스가 다른 방향에서 돌을 던졌다.
“이쪽이다!”
마수는 고개를 돌리며 포효하고, 숲 깊은 곳으로 달려갔다.
몇 분 뒤, 마침내 코르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라크스는 땅에 주저앉아 소녀의 어깨를 부축하며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소녀의 등에는 찢어진 옷과 스며 나오는 핏자국이 있었다.
“왜… 구해준 거야?”
소녀는 떨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듯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코르스는 조용히 다가가 파우치에서 약초를 꺼내 상처에 부드럽게 덮었다.
“아플 거야… 조금만 참아. 곧 멈출 거니까.”
그의 손끝은 따뜻했고, 마치 소중한 이를 지키려는 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소녀의 어깨가 흠칫 떨렸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라크스는 말없이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왜 구했냐고? 네 모습을 보니, 냅둘 수 없었으니까.”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어… 위험했으니까. 그뿐이야.”
코르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소녀의 뇌석과 같은 빛이 순간적으로 머물렀다.
소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천히, 희미하게 빛을 되찾더니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코르스는 붕대를 묶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이름, 물어봐도 될까?”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무들의 속삭임만이 시간을 길게 늘어뜨리듯 울렸다.
이윽고, 그녀는 희미하게 입을 열었다.
“…이리스.”
그 이름이, 처음으로 그들 앞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라크스도 코르스도 그 이름에 낯익은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나무들의 속삭임에 섞여, 어딘가 먼 기억의 밑바닥을 뒤흔드는, 묘하게 익숙한 울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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