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의 여백:소란과 밤바람
세레니아의 밤은 축제의 열기가 가라앉고, 고요한 온기로 감싸이고 있었다. 노점거리의 등불은 절반쯤 꺼지고, 허브 향과 북소리는 저 멀리 사라져간다. 가게 주인들이 간판을 내리는 소리가 돌길 위를 낮게 울리고, 불꽃놀이 연기가 밤하늘에 엷게 녹아들었다.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하며 거리의 소란은 주점과 여관에 모여들며, 희미한 등불이 길을 비춘다.
라크스와 코르스는 불꽃놀이를 감상했던 언덕에서 내려와, 닫히기 시작한 노점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라크스의 금빛 머리카락은 거리의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용의 꼬리는 잔뜩 치켜세워져 있었다. 축제의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붉은 눈동자가 이곳저곳을 생기 있게 두리번거렸고, 때떄로 코르스의 등에 시선을 던졌다. 꼬리 끝에서 푸른 뇌광이 찌릿하고 튀었고, 그녀는 멀리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를 쫓아 코를 킁킁거렸다.
코르스는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후드 달린 로브를 걸친 채 걸었다. 귀는 도시의 소음에 따라 살짝 움직였고, 붉은 눈동자에는 피로와 함께 어딘가 잔잔한 만족감이 어렸다.
“노점은 거의 다 문 닫았네. 배고프지? 주점에서 뭐 좀 먹고, 여관에서 자자. 밤새 오두막까지 걷는 건 무리야.”
라크스의 꼬리가 휙 움직이는 걸 눈치채고, 코르스는 작게 코웃음을 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주점? 거긴 어떤 데야?”
라크스는 눈을 반짝이며 꼬리를 바짝 세웠다.
“…정말, 진정 좀 해. 약초 판 돈으로 밥은 먹을 수 있지만, 소란 떨지 마. 눈에 띄어.”
코르스는 귀를 움찔하며 혀를 찼다.
두 사람은 돌길을 따라 걸어가다, 곧 ‘은늑대의 잔’이라 불리는 주점에 도착했다. 등불과 횃불의 따뜻한 빛이 나무 문틈으로 새어 나왔고, 웃음소리와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바깥까지 울렸다.
“오! 저기 진짜 시끌벅적하네! 뭐가 나올지, 엄청 기대돼!”
라크스는 코를 킁킁거리며 꼬리를 부드럽게 흔들었고, 눈은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묵직한 나무문을 열자, 등불 빛이 돌벽을 비추고 구운 고기와 향신료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나무 테이블엔 수인과 인간의 여행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고, 구석에서는 음유시인이 리라를 퉁기며 경쾌한 선율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와! 이 소리… 뭔가 가슴을 울려! 어서 밥 먹자!”
라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리라 소리에 고개를 흔들며 꼬리로 바닥을 탁탁 쳤다.
코르스는 빈자리에 앉아 짐을 옆에 내려놓고 여주인에게 음식을 주문했다. 곧 나무 접시에 담긴 세레니아 특산 '파로우디어 허브 구이'와 '뿌리채소 스튜'가 나왔다. 허브구이는 육즙이 풍부하고 향신료가 진하게 배어 있었고, 스튜는 달콤새콤하며 속까지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미쳤어! 이 고기 진짜 부드럽네! 너, 이거 매일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지 않아?”
라크스는 코를 킁킁거리며 허브 구이를 베어 물었다.
“…나쁘지 않네. 산미가 좋아.”
코르스는 스튜를 숟가락으로 떠서 조용히 입에 넣으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네 거 엄청 맛있어 보이는데?”
라크스는 코르스의 접시를 들여다보며 히죽 웃었다.
“탐내지 말고, 네 거나 먹어.”
코르스는 접시를 살짝 끌어당기며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냈다.
“귀가 실룩실룩하네~ 뭐 숨기고 있냐?”
라크스는 깔깔 웃으며 놀렸다.
“너야말로 눈이 반짝거리잖아.”
코르스는 시선을 피하며 코를 찡긋했지만, 그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웃음이 어렸다. 리라의 선율이 가볍게 흐르고, 주점의 소란 속에서도 두 사람의 온기가 잔잔히 스며들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주점 옆 여관 ‘달빛 그늘의 처마’로 향했다. 나무 건물은 등불로 따스하게 밝혀졌고, 현관에는 나무 냄새와 밤바람의 서늘함이 어우러져 있었다. 로비의 나무 바닥이 삐걱였고, 삐걱이는 로비의 마루를 지나자, 덩치 큰 수인 주인이 두 사람을 반기며 계단을 올라 좁은 객실로 안내했다.
“축제라 방이 꽉 찼어. 남은 건 1인실 하나뿐이야. 침대 하나에 담요 정도지만, 푹 쉬어.”
“둘이서 1인실? 뭔가 재밌겠네!”
라크스는 꼬리를 살짝 흔들며 웃었다.
“…정말, 애냐? 소란 떨지 마, 민폐니까.”
코르스는 짐을 어깨에 메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주인이 문을 열자, 간소한 1인실이 드러났다. 방은 좁고, 나무 냄새가 그득하며, 조그마한 침대 하나에 담요와 베개가 놓여 있었다. 창틀은 거칠었고, 밤바람이 커튼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창밖으로 세레니아의 별빛이 엿보였고, 희미한 별빛이 방을 채웠다.
“와, 진짜 좁네! 이 침대, 둘이 딱 붙지않으면 못 자겠는데!”
라크스는 방을 둘러보고 침대의 협소함에 눈을 반짝이며 깔깔 웃었다.
“…가까워, 바보야! 젠장, 시끄럽네.”
코르스는 침대 옆에 짐을 내려놓고 얼굴을 찌푸렸지만, 어깨가 살짝 풀리고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자, 코르스! 좁으니까 얼른 앉아! 창 밖의 별 진짜 예뻐!”
라크스는 침대에 털썩 앉으며 코르스를 살짝 끌어당겼고, 씨익 웃었다.
“…당기지 마. 진정 좀 해.”
코르스는 마지못해 침대 끝에 걸터앉았고, 어깨가 라크스의 어깨에 살짝 닿았다. 붉은 눈동자가 별빛을 좇으며 목소리가 살짝 부드러워졌다.
“좁은 방에 단둘이 있는데, 너 진짜 침착하다!”
라크스는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어깨로 코르스를 툭 치며 말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는 밤의 정적이 스며 있었다.
“좀 떨어져, 바보야.”
코르스는 어깨를 움츠리며 얼굴에 옅은 홍조를 띠었다. 그의 어깨가 라크스에게 기대어진다.
침대가 삐걱이는 가운데, 라크스는 담요를 어깨에 걸치고 창밖 별빛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린다.
“있잖아, 코르스. 오늘 세레니아에서 너랑 같이 밥 먹고 불꽃놀이 보고… 진짜 엄청 재밌었어. 너, 요즘 좀 부드러워졌지?”
“…예전엔, 그냥 누구도 가까이 안 뒀을 뿐이야.”
코르스는 무릎을 껴안은 채, 파우치에서 뇌석을 꺼내 쥐었다. 과거의 고독을 조용히 밀어내듯, 목소리는 낮고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나랑 같이 있잖아? …그 따뜻함, 제대로 전해지고 있어.”
라크는 코르스의 옆얼굴을 힐끗 보며 씨익 웃었다.
“뭘 떠름한 표정하는거야! 히죽이려는 거 다 티 나거든?”
라크스는 담요를 코르스에게 툭 던졌다.
“…시끄러. 굳이 웃을 필요 없잖아.”
코르스는 시선을 돌리며 뇌석을 쥔 손의 힘을 풀었다. 가슴 속에 잔잔한 온기가 퍼지고 있었다.
“코르스랑 이렇게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져. 또 이런 밤, 보내자.”
라크스는 담요를 함께 덮고 어깨를 기댔다. 목소리는 낮아지고, 밤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제멋대로 말하긴. …뭐, 나쁘진 않지만.”
코르스는 귀를 살짝 움직이며, 뺨에 붉은 기운을 띠었다. 그의 어깨는 라크스에게 기대어졌고, 시선은 별빛에 머물렀다.
좁은 방은 나무 냄새와 침대의 삐걱거림으로 가득했고, 별빛이 두 사람을 부드럽게 감쌌다. 라크스는 담요를 덮은 채 조용히 눈을 감았고, 코르스는 창밖의 별을 바라보다 담요를 조심히 끌어당겼다.
밤바람이 커튼을 흔들며 지나가고, 멀리 축제의 등불이 마지막 빛을 꺼뜨렸다. 세레니아의 여름 밤은, 별의 속삭임과 두 사람의 고른 숨결 속으로 천천히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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