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의 그림자 : 마음과 갈등

 

숲의 바람은 여름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한낮의 햇살이 나뭇잎 사이를 얼룩지게 비추고, 서늘한 바람이 잎사귀 틈새를 스쳐 지나갔다.
멀리서 쓰르라미 소리가 쓸쓸하게 메아리쳤다. 그 소리도, 바람의 냄새도, 어딘가 애잔해서, 계절의 흐름이 피부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듯했다.

 

라크스는 오두막 창가에 서서, 창틀에 손을 얹은 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 끝, 오두막 바로 근처에서 코르스와 이리스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코르스가 쪼그려 앉아 한 장의 잎을 손끝으로 집어 들자, 이리스가 몸을 기울여 들여다본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단편적으로 바람에 실려 왔다.  

 

“세나의 잎이야. 감기 초기에 효과가 있지.”  

 

“…아, 나 그거 예전에 헷갈린 적 있어. 찌릿하는 거랑.”  

 

“아마, 그건 이거였을 거야.”  

 

“와, 진짜네. 냄새로 알겠어. 맛없는 거야…”  

 

“혀가 저린다고 했었지?”  

 

그런 평범한 대화에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겹쳐졌다.
이리스가 코르스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그러고 보니…”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이자, 코르스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라크스는 숨을 삼켰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미소가 가슴 깊은 곳을 아릿하게 조여 왔다.  

 

“…저 녀석, 즐거워 보이네.”  

 

억지로 내뱉은 말 위로 바람에 섞여 쓰르라미의 울음이 되돌아왔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아무 의미도 가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목이 은근히 조여 오는 감각이 밀려왔다.
또다.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욱신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과거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 오두막 앞에서 장난치며 손을 잡았던 날. 코르스가 드물게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피했던 모습.
— 비 내리는 언덕에서 말다툼을 하다, 서로의 마음을 가늠하듯 침묵했던 순간.
— 사냥 도중, 이리스에게 살짝 닿던 그의 손을 보고 가슴이 요동쳤던 기억.
— 유적에서, 두 사람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감정을 조용히 나누고 있던 그 뒷모습.  

 

그 모든 순간, 자신은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웃음 뒤편에서 마음은 언제나 불안정했다.

 

장난처럼 굴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의미를 몰랐다. 아니,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그 하나하나가, 지금도 여전히 마음 깊이 새겨져 있다.  

 

'…왜 이렇게까지 신경 쓰이는 거지?'

 

코르스가 이리스에게 미소 짓고, 그녀가 부드럽게 응답한다.
그 사소한 주고받음만으로도 등골을 타고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소중한 무언가가,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져 간다.
…아니, 누군가에게 빼앗겨 버릴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게… 두려워.'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라크스는 시선을 떨궜다.
그렇게 느껴버리는 자신에게 옅은 혐오가 스며들었다.

 

그럼에도, 그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
품어버린 그 감정을 자신의 것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마치 그 자리에 꿰매어 놓은 듯 붙박여 있었다.

 

 

'이리스가 미운 건 아냐.'

 

그녀의 솔직한 말투도, 다정함도, 잘 알고 있다.
아마 누구보다 코르스를 깊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부정할 수 없었다.  

 

한편, 함께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삐걱거렸다.
그 아픔의 정체를 이제는 알고 있었다.

 

창가의 풍령이 바람에 흔들리며 ‘딸랑’ 하고 울렸다.
비 오던 날, 코르스와 이리스가 함께 만든 것이다.

 

맑은 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파문처럼 퍼지며, 억눌렀던 감정을 조심스레 흔든다.

 

'…알고 있었어. 훨씬 전부터.'

 

봄의 따스함, 여름의 소란, 겨울의 고요.
그 모든 것이 코르스와 보낸 기억과 얽혀 있다.  

 

단순히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그의 존재가 마음 깊은 곳을 채우고 있었다.  

 

'난… 코르스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거구나.'

 

'이게... 좋아한다는 감정일지도 몰라.'

 

그 한 마디가 마음에 떨어졌을 때, 손끝이 작게 떨렸다.
그러나,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할 용기는 없었다.

 

말로 내뱉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해버릴 테니까.
지금처럼 함께 웃고, 나란히 걸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보다 두려웠다.  

 

라크스는 풍령에 살짝 손끝을 댄다.
‘딸랑’ 하고 울리는 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한 여운으로 울렸다.  

 

밖에서 이리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코르스의 낮은 목소리가 바람에 섞여 전해졌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울림에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하지만 말하면, 깨져버릴지도 몰라.'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라크스는 알고 있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분명 후회할 것이다.

 

하지만, 더는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에 싹튼 감정에서 더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다시 바람이 부드럽게 스치며 풍령이 작게 울렸다.
맑은 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 작은 가시처럼 남았다.  

 

'말할 수 없다면… 적어도, 잊지 않도록 하자.'

 

이 감정을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늘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비록 말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마음 깊이 계속 타오르는 감정이라면,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용의 꼬리로 땅을 가볍게 치자, 푸른빛이 희미하게 튀었다.
햇살을 받으며 아주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려는 결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싹트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한 걸음은 아직 작은 불꽃처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